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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05 1인 무역회사 창업하기 - 동기부여(1) 4

무역... 貿易... Trade...

이런 어려운 말 말고, 그냥 "싸게 사서 적당히 마진 먹고 팔기" 라는 것으로 저 어려운 단어를 한마디로 말해 본다. 국내에서도 그 누구보다 저렴하게 어떠한 아이템을 매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그 아이템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웃나라 대국님께서 전세계의 물리적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모두 생산하는 공장을 대표하기에 21세기 생활에서 "무역 혹은 수출입"을 하지 않고서는 먹고살기 힘들다.  
 

필자의 아버지는 목재기계 수출입, 삼촌은 반도체 웨이퍼 수출입, 이모부는 농기계 수출입... 가족의 대부분이 무역을 하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흔히 멋진 말로 "사업을 한다" 라고 표현을 해준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룸 회장

1990년, 필자가 한국 나이 5살인 무렵, 엉금엉금 기어다닐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1년중 반정도를 해외에서 보내셨다. 파푸아 뉴기니아, 인도네시아, 러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일본, 중국, 당시 아버지가 주도하여 지금 든든한 역량이 된 "이건산업"의 "솔로몬 군도" 원목 수림 조성 등, 몸이 열 개라도 바쁜 당신이셨다.

자연스럽게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 영어, 중국어, 일어등과 같은 외국어 공부를 하셨고 잠은 전쟁에서 싸우는 도구를 연마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셨다.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이 굴러다니던 필자는 본의 아니게 외국어 습득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어느 덧 지금 현재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무역상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훌륭한 스승이며 되고 싶은 롤 모델이, 어릴적부터 간난아기에게 멋있게 사는것이 무었인지 "멋"을 보여주었던 아버지가 되기엔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학창시절 야구선수 생활, 외국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놀던 생활, 20살 이상 차이나는 형(?)들과의 동호회 생활, 자연스러운 경제교육을 담당하셨던 필자의 어머니, 결정적으로 망해봤자 잃을 것이 없는 20대의 내 자신이 "성공"이라는 부푼꿈과 함께 일자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처음 시작 아이템은 가장 자신있는 "야구공"이다. 중국에서 전세계의 야구공이 제작되는지라 제품을 만들어 야구 저변이 넓은 일본 시장에 납품하는 것이 필자의 첫번째 목표가 되었다.

그를 위해 세어보지 않았지만 독파한 서적들과 법률, 외국어 공부, 무일푼인 상황에서 어떤 지렛대(레버리지)를 사용하여 사업을 성공시킬지 고민의 연속을 달렸다.

-2010년 12월 15일 No41 업무일지 중...

 
Posted by Fast_Gumbae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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